[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중동 전쟁발(發) 에너지 충격으로 글로벌 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싱가포르가 부유층 자금의 피난처와 자산관리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9일 보도했다.
신문은 자산 컨설팅사 유니크 프라임 그룹의 기그 타나폰 CEO을 인용해 중동과 한국의 고액 자산가(HNWI)들이 규제 체계, 통화 안정성,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성을 이유로 싱가포르를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보유 자산 5000만 달러 규모의 한 동북아 테크기업 창업자가 이주 없이 가문 자산을 재구조화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법인을 신설한 사례를 소개했다. "(이주 없이도) 안정적인 영미법(English common law) 관할 하의 장기 승계 설계"가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설명이다.
각종 지표도 부유층 자금의 유입을 방증하고 있다. 싱가포르 증시의 스트레이츠 타임스 지수(STI)는 올해 2월 사상 처음 5000선을 돌파했고, 같은 달 총예금은 1조 6100억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자산운용 시장은 2024년 6조 700억싱가포르달러(약 4조 5000억 미국달러)로 전년 대비 12% 성장했다. 2024년 2000개를 넘어선 싱글 패밀리 오피스는 43% 급증했다. 투자펀드를 위한 법인 구조인 VCC(variable capital company)는 4월1일 기준 1338개에 이른다. VCC 구조에서는 주주 동의없이도 주식 발행이나 상환이 가능하다.
간 김용 부총리 겸 통화감독청(MAS) 의장은 지난 8일 "VCC와 자산운용 산업의 성장은 신뢰받는 펀드 허브로서 싱가포르 가치 제안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CGS 인터내셔널의 니킬 니요기 본부장은 VCC 체계를 "거버넌스, 비밀유지, 운영 유연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진정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홍콩도 일부 수혜를 보고 있다. 크리스토퍼 후이 홍콩 재경사무국장은 3월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개시 이후 자산관리·패밀리오피스 이전 문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니요기는 "2023년 말부터 패밀리오피스의 중동→싱가포르 분산이 뚜렷하다"며 "싱가포르는 더 이상 일시적 안전판이 아니다. 단기 안전판을 찾아 들어온 자금은 떠나지만, 거버넌스 구조에 정착한 자금은 더 깊이 뿌리내린다. 우리는 후자를 더 많이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금세탁 측면에서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2023년 30억 싱달러 규모 '푸젠방(Fujian gang)' 사건 직후 일부 중국계 자본 유출이 보도됐으나, 싱가포르는 이후 자금세탁방지 및 기타 사항법(AMLOMA)을 시행해 △자금 출처 입증요건 완화 △야생동물 밀매의 전제범죄 지정 △은행 간 의심거래 정보공유 플랫폼을 도입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 6일 발표한 정기평가에서 싱가포르 법 집행 품질을 대체로 긍정 평가하면서도 자금세탁 처벌 수위가 낮다고 지적했다. 니요기는 "온건한 환경에서는 부담스럽던 컴플라이언스가, 대안이 '관할 불확실성'인 지금은 걸림돌(friction)이 아니라 강점(feature)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메이뱅크의 앨리스 탄 그룹 자산관리 본부장은 "중동에 분산했던 아시아 고객들이 자금 일부를 싱가포르 등 아시아로 되돌리는 리밸런싱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고, OCBC의 카르멘 리 주식리서치 본부장은 "안전 자산·통화로의 이동 속에서 금과 싱가포르달러는 계속 주목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시 부양을 위한 주식시장발전프로그램(EQDP·Equity Market Development Programme)은 화룡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EQDP는 MAS가 지정 운용사에 자금을 배정해 중·소형주 중심으로 싱가포르 상장사 운용을 의무화한다. 2월 기준 9개사에 39억 5000만 싱가포르달러가 이미 배정됐다. SGX-나스닥 듀얼 상장 다리도 추진 중이며, IPO 조달액은 2024년 3140만 달러(4건)에서 지난해 18억 5000만 달러(12건)로 급증했다.
DBS의 아트 카루냐바니치 글로벌 ECM 본부장은 "싱가포르 증시는 이미 변곡점을 돌았다"며 일평균 거래대금이 2024년 초 10억 싱가포르달러에서 20억 싱가포르달러 이상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메이뱅크 시큐리티즈의 틸란 위크라마싱헤 싱가포르 리서치 본부장은 "글로벌 경제의 단극→다극 전환 속에서 ASEAN은 핵심 공급망 노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싱가포르를 아이스크림 선디에 비유하면 이미 여러 맛에 휘핑크림·스프링클까지 올라가 있어 충분히 군침이 도는 상태다. EQDP와 개혁은 그 위의 체리"라고 묘사했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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