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설래온 기자] 탭을 당기자 황금빛 맥주가 잔의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전문 탭퍼가 잔을 기울이고 각도를 조절할 때마다 하얀 거품이 촘촘하게 차올랐다. 같은 맥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따르면 맛과 향이 얼마나 달라질까?
6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1층에 마련된 '에비스 더 라운지'를 찾았다. 맥주와 음식의 향이 뒤섞인 공간에서 '에비스 오리지널'과 별도의 푸어링 방식을 적용한 '여운'을 차례로 마셔봤다.

첫 잔은 '에비스 오리지널'. 한 모금 넘기자 먼저 다가온 건 묵직한 쓴맛이 아니라 갓 구운 빵을 떠올리게 하는 고소한 맥아 풍미였다. 그 위를 크리미한 거품이 덮으면서 첫 맛은 예상보다 부드러웠다. 탄산도 날카롭게 튀기보다 잔잔하게 혀끝을 두드렸다.
몇 모금 더 마시자 숨겨져 있던 맛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알코올 맛이 서서히 앞으로 나왔고 온도가 조금 오르자 구수함 사이로 쌉싸름함도 더해졌다. 다만 쓴맛은 오래 남지 않아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해치지 않았다.
함께 나온 페어링 플레이트에는 문어튀김과 감자튀김, 소시지, 올리브 등이 담겼다.
오리지널과 가장 잘 어울린 음식은 소시지였다. 부드러운 식감과 은은한 훈연향이 맥주의 묵직한 맥아 풍미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중간에 곁들인 올리브의 짭짤함은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정리해 다음 모금으로 손이 가게 했다.

두 번째 잔 '여운'은 만드는 과정부터 눈길을 끌었다. 기본 방식으로 따른 뒤 마지막에 맥주를 한 번 더 떨어뜨리듯 붓는다. 일부러 낙차를 만들어 잔 안의 질감을 다시 깨우는 방식이다.
잔도 일반적인 맥주잔이 아닌 입구가 좁은 와인잔을 사용했다. 향을 잔 안에 모아 코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게 행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코를 가까이 대자 첫 잔보다 향이 또렷하게 올라왔다.
입안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풀렸고 탄산은 조금 더 경쾌했다. 특히 탄산은 오리지널보다 경쾌하게 느껴졌고 목을 넘긴 뒤에는 맛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대신 쌉싸름한 풍미와 향은 입안에 더 길게 남았다. 이름처럼 마신 뒤의 '여운'에 초점을 맞춘 잔이었다.
여운과 가장 잘 어울린 음식은 치즈케이크였다. 치즈의 달고 묵직한 맛이 입안을 채우면 맥주의 쌉싸름함이 이를 한 번 끊어냈다. 뒤이어 은은한 곡물향이 올라오면서 단맛만 남는 것을 막았다.
카라멜 시럽을 입힌 호두까지 곁들이자 단맛과 고소함이 한층 선명해졌다. 디저트의 묵직함과 맥주의 탄산·쓴맛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서로의 맛을 밀어내기보다 보완했다.

두 잔은 같은 에비스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결이 달랐다. 오리지널은 크리미한 거품과 고소하고 묵직한 맥아 풍미가 중심을 잡았다. 여운은 향을 더 선명하게 끌어올리고 탄산과 마신 뒤의 쌉싸름함을 강조했다.
국내 대중 라거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시원하고 빠른 목넘김에 초점을 맞춘 카스·테라·켈리 등의 국내 라거와 비교하면, 에비스는 천천히 음미하는 쪽에 가까웠다. 음식과의 조합은 물론 온도와 거품이 변하면서 풍미도 조금씩 달라져 한 잔을 오래 붙들게 했다.
팝업 이후에도 일반 에비스 생맥주는 국내 취급 업장에서 접할 수 있다. 다만 여운의 푸어링은 이번 행사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된 방식이다.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잔을 어떻게 완성하느냐까지 보여주는 경험은 이번 팝업의 가장 큰 차별점이었다.
마지막 한 모금이 지나간 뒤에도 은은한 잔향은 한동안 입안에 머물렀다. 옅은 쓴맛은 차츰 잦아들었지만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느새 잔이 바닥을 드러내자 한 잔의 끝이 조금 더 아쉽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