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장관 지명까지 걸고 "추석 물가를 확실히 잡으라"고 주문했지만, 정작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을 쏟아부어 성수품 값을 눌러도, 정작 물가를 밀어 올리는 근원물가는 정부 대책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계속 오르고 있어서다.
강기룡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2일 물가관계부처회의에서 통신비 기저효과를 제외하면 8월 물가는 2.5%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기저효과가 빠지고 나면 물가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뉘앙스에 가깝다.

반면 한국은행은 같은 날 이지호 부총재보 주재로 열린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결이 다른 평가를 내놨다. 이 부총재보는 8월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제외)가 개인서비스와 내구재 가격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통신요금 기저효과까지 더해지며 전월 2.6%보다 큰 폭 오른 3.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9월 물가는 기저효과 소멸로 8월보다 낮아지겠지만 "근원 품목을 중심으로 기조적인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중동전쟁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비용충격의 전이, 수요측 압력 확대 등으로 근원물가를 중심으로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계심을 가지고 물가상황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정부 "기저효과 빼면 2.5%"...한은 "근원물가는 기조적으로 오른다"
실제 수치를 봐도 한국은행 쪽 우려에 무게가 실린다. 근원물가는 지난 3월 2.2%에서 8월 3.4%까지 5개월 연속 올랐다. 이 가운데 내구재 가격 상승률은 같은 기간 1.7%에서 4.1%로, 통신비 기저효과와 무관하게 꾸준히 확대돼왔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세부 자료를 보면 8월 물가 상승률 확대(2.8%→3.1%)에는 서비스 부문이 +0.58%포인트로 가장 크게 기여했고, 농축수산물(-0.28%포인트)과 석유류(-0.06%포인트)는 오히려 하방요인으로 작용했다. 서비스 중에서도 공공서비스 상승률이 7월 1.4%에서 8월 6.5%로 뛰었는데, 이는 휴대전화료가 7월 0.1%에서 8월 26.8%로 치솟은 영향이 절대적이다. 지난해 8월 시행됐던 통신요금 반값 할인이 1년이 지나며 기저효과로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기대인플레이션(향후 1년)은 8월 2.7%로 7월(2.7%)과 같은 수준을 유지해 2%대 후반을 지속하고 있다. 급격한 물가 불안 심리로 번지지는 않았다는 뜻이지만, 목표치(2%)를 웃도는 수준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여전한 부담이다.
◇ 통신료 26.8% 폭등...공공서비스가 근원물가 견인
정부가 추석 민생 안정을 위해 꺼낸 카드는 역대 최대 규모다. 19대 성수품을 평시의 1.6배인 18만3000톤 공급하고, 폭염 피해가 컸던 채소류(배추·무·양파·마늘·애호박)는 평시 1.9배인 1만8000톤, 사과·배 등 과일은 평시의 3배가 넘는 3만2000톤을 시중에 풀기로 했다. 할인지원 규모는 역대 최대인 1030억원(농축산물 590억원, 수산물 440억원)이며, 유통업체는 정부 지원 20%에 자체 할인을 더해 농축산물 최대 40%, 수산물 최대 50%까지 할인 판매한다. 소상공인·중소기업에는 역대 최대인 43조4000억원 규모의 명절자금이 공급되고, 서민·취약계층 대상 정책금융도 작년의 4배가 넘는 4800억원으로 확대됐다.
이런 정책 노력의 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제유가가 7월 이후 상승했음에도 석유 최고가격제 덕분에 석유류 상승률이 전월보다 소폭 둔화(15.5%→14.2%)됐고, 강 차관보에 따르면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8월 물가상승률은 3.6%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축수산물 물가도 정부 할인지원과 양호한 작황에 힘입어 전년동월대비 2.6% 하락하며 2019년 11월 이후 6년 9개월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정부가 직접 쥔 정책 수단(최고가격제·할인지원·성수품 집중 공급)의 효과는 뚜렷하다. 최고가격제만으로 물가를 0.5%포인트 눌렀고, 농축수산물은 6년 9개월 만의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추석 민생안정 대책에도 8월 물가가 통신비 기저효과로 상승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어, 정부가 이런 흐름을 어느 정도 예상하며 대책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 1030억 할인, 18.3만톤 공급...대책은 역대급이지만
문제는 한국은행이 지목한 근원물가다. 개인서비스와 내구재 가격은 정부의 성수품 할인이나 최고가격제로 직접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비용충격의 전이, 수요측 압력 확대"를 근원물가 상승 요인으로 짚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확실성과 폭염 등 기후 변수까지 겹치면, 추석 연휴가 낀 9월 지표에서 통신비 기저효과가 빠지더라도 체감물가 부담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행정 카드는 이미 이번 대책에 상당 부분 투입됐고 그 효과도 확인된 반면, 한국은행이 우려하는 근원물가의 기조적 상승세는 정부 대책만으로 잡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받아낸 "확실하게 잡겠다"는 약속의 이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에게 "추석이나 이럴 때 되면 물가 오른다고 다들 아우성이잖나. 이번에는 자신 있나"라고 물었다. 이 차관이 "확실하게 잡겠다"고 답하자 "재경부 장관 지명 취소할 수도 있는데, 진짜 확실히 할 건가"라고 재차 다짐을 받았다.
정부는 같은 날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고, 이튿날인 2일 오전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각각 물가 관련 회의를 열어 8월 소비자물가를 평가했다. 두 기관 모두 8월 물가가 3.1%로 오른 배경을 통신비 기저효과로 짚은 점은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망에서는 온도차가 뚜렷했다. 정부는 "일회성 요인만 걷어내면 부담이 준다"는 쪽이었고, 한국은행은 "일회성 요인과 별개로 근원적인 상승 압력이 쌓이고 있다"고 봤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